서울이란 곳을 주무대로 살아온지 15년이 넘어간다.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다보니 내가 사는 곳의 모양이 어떤 지, 색깔이 어떤지 생각치않고 그냥 지나친다 그러다 문득 주변을 보니 전에 그냥 보아오던 많은 것들이 사라져 있다. 한낮에 눈 뜨고도 길을 잃었던 피맛골이 사라졌고, 없는게 없었던 세운상가가 사라졌고, 청계천 상가가 사라졌다. 그러면서 그 속에 숨쉬던 많은 공간들이 함께 사라졌다. 그래서일까? 사라지지 않고 예전 모습 그대로 활력이 넘치는 곳을 보게되면 기쁘고 반가운 마음을 감출수가 없다.
‘광장시장’이 바로 그런 곳이다. 도심 한복판이라고 할 수 있는 종로5가에 위치해 있으면서 이전의 시장 모습을 유지하고 있고, 언제나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흔치 않은 곳이다. 얼마전 그곳에서 모임이 있어서 오랫만에 사람들 숨쉬는 냄세도 맡고 좋은 사람들과 소주도 한잔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왔다.
광장시장의 한복판에는 오밀조밀 수십개의 노상 가게가 있다. 예전에 이 곳에 왔을 때 한 가게의 할머니가 나이 드신 분에게 공짜로 음식을 주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위의 할머니다. 그날도 그 할머니 가게에서 1차를 시작했다.
족발이 '날 잡수쇼' 하듯 눈앞에 진을 치고 있었지만 못본 척 무시했다. 할머니도 족발이 맛나다고 자꾸 먹어보라고 하신다.
할머니 가게에서 순대, 돼지껍데기, 오뎅탕 등을 시키고, 바로 옆에 있던 마약김밥 가게에서 김밥을 샀다. 엄청 푸짐하게 차려놓고 먹었지만 가격은 얼마하지 않았다. 조금 있으니 할머니가 머리고기 먹어보라고 더 주신다. 이렇게 푸짐하게 주시면 뭐가 남으시는 지 ...
살짝 얼큰할 무렵 1차를 마치고 처음에 가고자했던 '순희네 빈대떡'으로 향했다. 할머니 가게나 순희네나 모두 광장시장 안에 있는 가게 여서 잠깐 걸으면 되지만 북적이는 사람들 때문에 이동이 쉽지 않다.
'순희네 빈대떡'은 광장시장에서 나름 유명한 곳이다. 겨우 한자리 잡을 수 있었고, 주문하자 바로 엄청난 양의 빈대떡이 나왔다. 이 또한 가격이 무척 저렴하다. 배가 꽤 찼었지만 빈대떡에 막거리 몇사발 술술 들어간다. 거 참 오묘한 맛이란~
살짝 혼미해져가는 정신을 부여잡고 3차를 하기 위해 '창신육회'로 이동했다.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웃고 하다보니 창신육회에서는 사진 찍는 것을 잊었다. 그 곳에서 몇명이 더 합류하고 부어라 마셔라 하다보니 시간은 어느덧 다음날이 되고...
광장시장에서 노상 가게, 순희네 빈대떡, 창신육회까지 돌면서 푸짐하고 맛있게 먹었지만 호주머니는 아직 든든하다. 서울에서 이보다 정많고 사람 냄세 많은 곳이 또 있을까? 개발도 좋지만 이런 곳이 영원히 보존되어 피곤한 심신을 달랠 수 있었으면 좋겠다.